지역에서 이름 난 매운탕집 주인장으로 이미 꽤나 유명한 그였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공인’이 될 줄은 몰랐다. 신문에, 방송에, 인터넷에 그의 가게와 가족들의 이름, 신상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낙인 인생’의 시작이었다. “이 집이 코로나래” 전북 진안에서 17년, 전주 우아동에서 20년. 매운탕에 인생을 걸고 열심히 살았다. 60대 후반의 김 씨 부부가 젊은 날을 쏟아 부은 ‘죽도민물매운탕’.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이 이름이 졸지에 ‘코로나 식당’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