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실감나는 이야기 만드는 내러티브 포물선
목소리가 고운 메추라기
Jun 28,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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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뉴스레터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코끼리, 코끼리의 번역노트> S1E9입니다. 뉴스레터 링크🐘

[S1E9] 실감나는 이야기 만드는 내러티브 포물선

2017년 6월 17일 새벽 1시30분 일본 근해에서 필리핀 선적의 대형 화물선 ACX 크리스털호와 충돌한 미 해군 구축함 USS 피츠제럴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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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7일 새벽 1시30분경 미 해군 구축함 USS 피츠제럴드호가 일본 근해에서 필리핀 선적의 대형 화물선 ACX 크리스털호와 충돌합니다. 이 사고로 해군 대원 7명이 사망합니다. 충돌로 물에 잠긴 격실 내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피츠제럴드호는 7함대의 주축 이지스 구축함이죠. 미 해군 제7함대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 동북아 등을 관할합니다. 각종 미사일 공격 등을 방어하고 요격하는 전투함인데, 화물선도 제대로 피하지 못한 것입니다.

-미국의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는 이 피츠제럴드호 충돌 사고와 비슷한 시기에 7함대에서 벌어진 또 다른 충돌사고를 파해쳐 미해군 7함대의 문제점을 들춰내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 13000쪽 분량의 조사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하고 재판에 참석하며 전·현직 해군 병사와 장교 그 가족들까지 찾아 인터뷰를 벌였습니다.

-오늘 소개할 기사는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기사로 피츠제럴드호의 충돌사고를 세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기사에 묘사된 생생한 장면을 재구성하기 위해 진술서와 로그 기록, 인터뷰 등을 확인했고, 인터뷰를 거절한 이들은 진술서 등 기록을 통대로 인용했다고 합니다. 따옴표(“”)로 인용된 대화는 인터뷰와 진술서에 쓰인 그대로라고 하네요.

-이 기사를 소개하는 이유는 ‘내러티브 포물선’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내러티브 포물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 3막 구조 ‘시작-중간-끝’을 더욱 세분화해 시각화한 것입니다. 갈등의 흐름을 사건과 상황에 맞게 포물선 형태로 그려낸 것이죠. <퓰리처 글쓰기 수업>(잭 하트)을 보면 이 내러티브 포물선을 건축가의 설계도에 비유합니다. 독자들이 계속 글을 읽어나가도록 설계된 사건의 배열인 것이죠.

-내러티브 포물선은 발단-상승-위기-절정-하강의 단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사는 이 순서대로 진행되기도 하고, 사건의 중간지점, 즉 상승 혹은 위기 단계에서 시작해 발단의 과정으로 다시 돌아가는 ‘플래시백’의 형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기사는 프롤로그부터 5개의 챕터가 이어지고 에필로그로 마무리됩니다. 각 챕터가 이 내러티브 포물선에서 제 역할을 하는데요. 포물선 전체는 플래시백 형태로 설계됐습니다. 프롤로그와 챕터 1은 사고 직후의 상황 즉, 상승 혹은 위기 상태를 보여주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사고 직전의 상황이 챕터 2~3에서 다뤄집니다. 발단과 상승의 과정입니다. 다시 챕터 4에서 사고 직후 침실에서 빠져나오려는 해군 대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챕터 5에서는 사고 직후 수습 과정과 유가족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절정에 이른 사건이 하강하기 시작하고 사고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에필로그로 대단원을 이룹니다.

-감춰졌던 방대한 진실을 드러낼 때 내러티브를 활용하면 읽는 이가 더욱 공감하고 분노하며 깊이 빠져들 것입니다. 오늘의 뉴스레터는 한 편의 긴 이야기를 챕터의 주욕 단락을 발췌해 모아뒀습니다. 이런 내러티브 포물선을 상상해보면서 주욱 읽어보면 스토리 구조에 대해 공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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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2017년 6월 17일 새벽 1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각, 알렉산더 본은 해군 구축함 USS 피츠제럴드호의 침상에서 침실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갑자기 차갑고 짠 물이 느껴져 잠이 달아났다. 그는 두 다리로 버텨 서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때 허벅지에 강한 물살이 느껴졌다.

주변의 수병들이 비명을 질렀다. “물이다! 침수됐어!” 본은 검은 플라스틱 안경을 더듬어 찾으며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침실을 살피려고 애썼다.

일본 해안에서 12마일 떨어진 태평양의 수면 아래, 깔끔하게 정리돼 있던 제2침실이 무너져 내렸다. 수병들이 ‘관짝’이라고 부르는 비좁은 이층 침대는 비정상적인 각도로 구겨졌다. 베이지색 철제 관물대는 물에 잠기는 중이었다. 신발, 옷, 매트리스, 심지어 운동용 자전거까지 어둠 속에 제 멋대로 떨어져 좁은 침실 통로를 막고 있었다.

본은 비상용 랜턴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침대에서 뛰어내리는 다른 대원들을 볼 수 있었다. 몇몇이 부유물을 헤치고 배의 좌현에 있는 본의 침대 옆 탈출 사다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피츠제럴드호의 선체가 포장지처럼 찢어져 생긴 구멍으로 수만 톤의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

<챕터1>

충돌 당시, 크리스털호의 선수는 피츠제럴드호의 또 다른 침실과도 부딪혔다. 이 침실은 한 남자가 쓰던 곳이었다. 40세의 피츠제럴드호 함장 브라이스 벤슨의 침실이었다.

벤슨의 선실은 수병들이 쓰는 제2침실보다 4층 더 높은 곳, 그러니까 해수면 위쪽에 자리했다.

크리스털호는 벤슨 함장의 침실 아래쪽에 구멍을 뚫어놨다. 이 충돌로 의 벤슨 함장의 침실과 접견용 사무실을 은박지처럼 한 데 구겨놨다.

충돌의 충격으로 벤슨은 잠에서 깨났다. 금속 배관이 그의 위로 떨어졌다. 벤슨의 머리에선 피가 흘렀다. 벤슨은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는 철제 기구와 전선에 뒤엉켜 움직이지 못했다.

충돌 충격으로 벤슨은 잠에서 깼다. 금속 덕트가 그의 위로 떨어졌다. 그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강철과 전선이 뒤엉킨 곳에 파묻힌 채 갇혀 있었다. 그는 아내가 만들어 준 누비이불을 움켜쥐었다. 누비이불에는 파란색과 흰색의 사각형이 군함 형상을 감싸고 있었다.

침실은 춥고 어두웠다. 벤슨은 찬 공기가 스치고 지나는 걸 느꼈다. 충격 속에서 그는 자신이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침실 벽이 찢겨나가 벤슨은 140도 각도로 어두운 바다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멀리 일본의 해안에서 비치는 불빛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는 배가 피격당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귀에 수병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들렸다.

(...)

콜드웰 선임하사가 침상에 누워있는 벤슨을 발견했다. 끊어진 전선에서 불꽃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함장님," 콜드웰이 말했다. "제 손을 잡으세요.”

"신발을 신을 수가 없어.” 벤슨이 말했다.

"신발 따위는 신경쓰지 마세요. 함장님!” 콜드웰이 말했다. “제 손을 잡아요!”

태평양의 검은 바닷물이 흘러가는 동안 두 사람은 팔을 마주 잡았다. 콜드웰을 뒤에서 붙잡고 있던 해병들이 함장과 함께 그를 끌어당기자, 벤슨 함장은 침실에서 끌어냈다.

벤슨은 맨발에 긴팔 셔츠, 운동용 반바지를 입은 채 흠뻑 젖어 있었다. 얼굴에 피가 흘렀다. 그는 사다리를 붙잡고 한 칸식 올라갔다.

충돌 16분 후인 오전 1시 46분, 벤슨은 휘청거리며 함교에 올라섰다. 아드레날린과 공보, 그리고 분노가 그를 사로잡았다. 피츠제럴드호는 어둠 속에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기울어져있었다. 전기가 모두 나가 통제 모니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상용 랜턴과 달빛만이 함교를 비췄다.

벤슨은 당직 장교가 흐느껴 울고 있는 걸 보았다.

“함장님, 제가 다 망쳐버렸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함교는 혼돈 그 자체였다. 장교와 당직 사병들은 모두 기절한 것 같았다. 어둠 속에 흔들리는 플래시와 휴대폰 불빛에 비친 질려버린 표정들이 언뜻 보였다. 배는 고요했다. 항해 중인 함정이 끊이 없이 내는 굉음에 익숙한 선원들에게는 무서울 정도의 적막감이었다.

(...)

<챕터2>

(...)

7함대의 구축함들은 출동 횟수가 많기 때문에 계속해서 수리해야한다. 피츠제럴드호이 유지 보수해야 할 목록은 수백 건이 넘는다. 대부분 사소한 것이었다. 냉각수 교체나 세탁기 교체 등이었다.

하지만 해결해야하는 결함 중에는 심각한 것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기본 항법 시스템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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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번역 노트>는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코끼리'가 엄선한 해외의 내러티브 논픽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곳곳에 숨은 이야기를 찾는 이들과 영감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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