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물감 없는 피카소, 연료 없는 페라리, 그리고 감기에 걸린 프랭크 시나트라
목소리가 고운 메추라기
May 14,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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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뉴스레터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코끼리, 코끼리의 번역노트> S1E8입니다. 뉴스레터 링크🐘

공연 전 유리잔을 들고 있는 프랭크 시나트라. '프랭크 시나트라, 감기에 걸리다'에도 등장하는 1965년 라스베이거스의 더샌즈 호텔에서 촬영됐다. By John Dominis/Time Life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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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버번위스키 잔을 들고 다른 손엔 담배를 쥐고 있던 프랭크 시나트라는 바의 어두운 구석에 서 있었다. 매력적이지만 시들해 보이는 금발의 여성 두 명이 시나트라를 사이에 두고 그가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저녁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버리힐즈의 이 클럽에서 그는 더욱 동떨어져 보였다. 그의 시선은 담배 연기로 자욱한 어두운 허공 너머로 향했다. 대형 룸 안의 작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포크록에 맞춰 트위스트를 추는 10여명의 젊은 커플들을 바라봤다. 금발의 두 여성은 시나트라 주위에 있는 그의 남성 친구 네 사람처럼, 그가 이런 기분에 빠져 있을 때 말을 거는 일이 썩 좋지 않은 생각이란 걸 알았다. 그가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의 50세 생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11월의 첫 주였다.

시나트라는 지금 자신이 굉장히 하기 싫고 빨리 끝내 버리고 싶은 영화를 촬영하는 중이었고, 이날 함께 있지 않지만 스무살의 여배우 미아 패로와의 열애설이 퍼져 지쳐있었다. 그의 삶을 다룬 CBS 방송국의 다큐멘터리에도 몹시 화가 났다. 2주 후 방송될 이 다큐멘터리는 그의 사생활을 파헤치고 마피아 두목과 친밀한 관계라는 추측성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한다. 또 그는 NBC 방송에서 진행될 한 시간짜리 쇼 ‘시나트라 - 한 남자의 그의 음악’ 촬영도 걱정됐다. 그는 이 방송에서 18곡을 라이브로 불러야 하는데, 최근 그의 목소리는 약하고 불안정한 상태였다. 시나트라는 병에 걸렸다. 시나트라를 약하게 만든 건 너무 흔해 많은 사람이 사소하게 여기는 질병이었다. 하지만 이 질병에 걸린다면, 시나트라는 극심한 괴로움과 깊은 부진, 공황, 분노에 빠지게 된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감기에 걸린 것이다.

감기에 걸린 시나트라는 물감 없는 피카소, 연료 없는 페라리나 마찬가지다. 더 안 좋아질 뿐이다. 이 흔한 감기는 보험도 들 수 없는 보석같은 그의 목소리를 빼앗고 그의 자신감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그의 자신감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일하고, 함께 마시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의지해 살아가는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심신의 코막힘 상태에 빠지게 했다. 감기에 걸린 시나트라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주는 충격은, 미국의 대통령이 갑자기 아파 겪게 되는 국가 경제적 위기보다 더 클 것이다.

-Frank Sinatra Has a Cold, By Gay Talese, April 1966, Esqu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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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에서 10년 동안 기자생활을 한 게이 텔리스Gay Talese는 일반적인 뉴스 기사 작성에 한계를 느끼고 남성 잡지 <에스콰이어>와 1년에 6편의 글을 출고하기로 계약합니다. 그 첫 번째 작업물이 바로 오늘 소개한 ‘프랭크 시나트라, 감기에 걸리다’Frank Sinatra Has a Cold입니다.

-시나트라는 1940~1960년대를 풍미한 미국의 전설적인 가수이자 배우입니다. <에스콰이어>는 시나트라의 ‘프로파일링’ 기사를 쓰기 위해 수년 동안 섭외 요청을 했지만, 시나트라는 계속 거절해 왔죠. 프로파일링 기사는 일문일답 형태의 단순한 인터뷰 기사가 아니라, 그 인물의 모든 것을 취재해 알려지지 않은 일면을 드러내는 기사를 말합니다. 프로파일링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그 인물을 인터뷰하고 그 주변 인물과 일기나 사진, 관련 기사, 저술 등 모든 자료를 파헤칩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인물의 인터뷰이겠지요.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면 프로파일링 기사를 쓰기 어려울 게 뻔합니다.

-하지만 텔리스는 기사를 포기하는 대신 3개월가량 그를 쫓아다니며 관찰하고, 그의 주변 인물들을 취재합니다. <에스콰이어>는 그가 시나트라의 프로파일링 기사를 쓸 수 있을지 확신하기 힘들었을 테지만, 5000달러의 취재비를 텔리스에게 지급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취재를 시작한 텔리스는 바에 앉아 금발의 미녀에 둘러싸인 채 우울한 표정을 짓는 시나트라를 발견했나 봅니다. 시나트라는 50세 생일을 앞두고 있고, 자신을 비난하는 다큐멘터리와 스무살 여배우와의 열애설로 지쳐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감기에 걸렸죠. 텔리스는 감기에 걸린 시나트라를 두고 물감 없는 피카소, 연료 없는 페라리에 비유하는 유명한 표현을 남깁니다. 그렇게 이 전설적인 프로파일링 기사가 시작됩니다.

-이 기사의 도입부는 생생한 장면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성격이나 그가 처한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묘사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재치 있는 표현들이 흥미를 끌어냅니다. 기사의 중반부에도 이런 장면과 인물 묘사가 등장합니다. ‘감기에 걸린 시나트라'라는 기사의 핵심 주제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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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인 월요일, 캘리포니아는 흐리고 계절에 맞지 않게 제법 쌀쌀했다. 100명이 넘는 이들이 TV 스튜디오에 모였다. 이 거대한 스튜디오는 백색 무대, 백색 벽, 그리고 수십개의 조명과 램프로 꾸며졌다. 마치 거대한 기계실처럼 보였다. 한 시간쯤 뒤면 이 스튜디오에서 11월24일 밤에 컬러 TV로 방송될 예정인 NBC의 1시간짜리 쇼의 녹화가 시작된다. 이 쇼는 25년 경력의 시나트라가 엔터테이너로서 이어온 삶을 집중 조명하게 될 것이다. 이 쇼가 곧 CBS에서 방영될 프랭크 시나트라의 사생활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따로 검증하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NBC의 쇼는 시나트라가 그를 고향인 뉴저지주 호보컨에서 할리우드로 이끈 히트곡을 1시간 동안 부르는 것으로 구성되었고, 이따금 영화나 맥주 광고가 삽입될 예정이었다. 감기에 걸리기 전 시나트라는 이 쇼를 매우 기대했다. 이 쇼는 그의 전성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로큰롤 팬들에게 그의 능력을 선보일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틀스와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홍보 담당자인 짐 마호니가 준비한 보도자료에는 그의 로큰롤 실력이 강조됐다. “멜론 상자를 가릴 정도로 두꺼운 걸레 같은 머리를 한 어린 가수들에게 지쳤다면, 이 쇼 ‘시나트라, 한 남자와 그의 음악'이 신선한 감흥을 일으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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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번역 노트>는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코끼리'가 엄선한 해외의 내러티브 논픽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곳곳에 숨은 이야기를 찾는 이들과 영감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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