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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잘 나서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20대 취준생 시절, 언시생 카페 '아랑'에서 직접 만든 스터디가 ‘이동진의 빨간 책방 스터디’였다. (빨간 책방에서 소개되는 책을 읽고, 빨간 책방을 듣고 글하나 쓰는 스터디였음) 이걸 만든 이유는 내가 안 만들면 아무도 안 만들 것 같아서였다. 물론 언론고시에 그다지 성과가 있는 스터디였는지 모르겠지만.. 하는 동안 즐거웠다.
이 양반은 영화도 많이보고 책도 많이보지만 활동도 엄청나게 많이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것들을 모두 다 들었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제일 많이 들었고, 웬만한 GV후기나 블로그 글 등도 거의 모두 챙겨보려고 노력한다. 10년 이상을 이렇게 본 것 같은데 그럼에도 지금까지 매번 너무 재미있고 공감 가는 지점들이 생기는 게 신기할 정도다. 아마 그가 소화하는 엄청난 양의 독서와 영화감상 등 성실함 때문인 것 같다.
콘텐츠를 보고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을 때 텍스트로 정리해놓지 않으면 찝찝해하는 타입이라 보면서 결국 노트북을 켰다.
이동진은 자신이 프리랜서 타입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회사 다닐 때 10시 출근이었는데도, 전 지각을 많이 했어요. 근데 프리랜서로서 직장인보다 일을 많이 하거든요? 저는 올빼미형이라, 프리랜서를 하고 훨씬 행복했어요. 간단하고 물리적인 문제도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미국에서 1년 연구원으로 있을 때 이야기예요. 전 제가 지금까지 우울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캘리포니아에서 지내니깐 365일 동안 300일은 해가 쨍쨍해요. 내가 이렇게 속이 없나? 싶을 정도로 가벼운 사람이 되더라고요. 의외로 사람에겐 날씨, 사는 곳, 주거환경, 근무패턴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수 있어요.
유튜브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갈무리.
이동진은 해당 콘텐츠에서 '하고 싶은 일을 70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30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저는 일에 있어서, 하고 싶은 일을 안 해도 됩니다. 일은 항상 즐거울 수 없고, 인간에겐 일이 필요하잖아요. 돈을 벌어야 하고요. 리듬적인 부분이라든가. 물론 제가 하는 일이 좋아해서 하는 부분도 있지만요. 저는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못해도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이번 콘텐츠에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목표 세우고 꿈을 이뤄가는 걸 즐겨하는 타입이기에(그 꿈이 매우 사소하긴 함) 그가 하는 말에 동의는 가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나에게 대화상대의 취향과 생각이 다른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꿈에 대해 전 소수파예요. 인생에서 꿈이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꿈은 사악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직장에서나 프리랜서로 일할 때 중요한 건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에너지를 얻는 것일 수 있어요.
꿈이라는 것의 필연적인 속성이, 당연히 경쟁이 있어요. 물론 그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꿈을 이루면 그다음 꿈이 생기고, 또 다음 꿈이 생기고. 이루어진 꿈에 대해 결국 권태와 결여를 느끼게 돼요.... 인간의 목표와 꿈은 단계별로 증폭될 수밖에 없고 걸신들린 것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저는 꿈이 없어서 그나마 덜 불행했던 것 같아요. 인생에서 꿈이라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어요. 물론 저 같은 견해는 소수파인 것 같아요.
사실 김중혁처럼 이동진과 취향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지만 이동진이 보지 못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이동진에게 많이 없는(;;)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과의 대화 수준을 기대할 순 없었다. 물론 그분이 다른 진행자들보다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봐왔던 투샷인 김중혁과 비교가 되다 보니 그렇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이동진 평론가가 김중혁과 대화를 할 때보다 이 매니저와 이야기를 할 때 무언가 좀 더 자신감(?) 있고 꼰대스럽기도 한 면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아마 친구이자 존경하는 소설가와 이야기할 때와, 무언가 자신이 ‘선생’같이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대화를 하다 보니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이런 말들이다.
-강한 의지력을 가질 수 있는 비법은?
이런 말하고 싶지 않지만, 타고나는 게 절반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느냐 잘하는 일을 해야 하느냐 뭐 이런 것들. 어떤 아이가 영화평론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 봐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영화평론가가 되고 싶느냐, 아니면 직업인으로 영화평론가가 되고 싶은 건지. 그냥 영화평론가가 되는 거, 직업인이 되는 건 쉬워요. 웬만한 사람들은 이룰 수 있어요. 진짜 내가 원하는 게 그 일인지, 그 일로 인한 성공인지 구분해야죠.
많은 사람들은 일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 일로 인한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파이아키아 같은 방송도 하나 하고, 강의도 하고 이런 저의 활동을 원하는 것 같아요. 제가 영화평론가로서 도달한 어떤 지점을 원하는 거잖아요. 그건 차이가 있어요.
"제가 영화 평론가로서 도달한 어떤 지점을 원하는 거잖아요."라니. 이 말을 듣고 다시 영상을 처음으로 돌리고 노트북을 켜고 말았다.
만둣국을 끓여 먹으며 '파이아키아'를 보고 있다.
인간이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계가 있단 말이에요. 내가 인생에서 책임질 사람은 분명 있습니다. 내 아이, 가족, 가장 친한 친구 등. 그게 아니면 사회적 관계만 충족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하는 순간 한국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치든 경제든 무슨 영역이든. 느슨한 호의로 이어지는 제각각 독립된 관계가 이상적인 것 같아요, 다만 세상을 다정하게 대해야 하는 거죠.
이 글은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의 브런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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