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911'을 탄생시킨 방관자들과 제노비스 살인사건의 진실
목소리가 고운 메추라기
Jul 14,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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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코끼리, 코끼리의 번역노트>에 연재된 글입니다. 링크🐘

☎️'911'을 탄생시킨 방관자들과 제노비스 살인사건의 진실

1964년 3월 13일, 흉기에 찔려 사망한 키티 제노비스. 그녀의 죽음은 범인도 피해자도 아닌 목격자들 때문에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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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이라는 숫자를 보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사용되는 긴급 신고 번호 911일 것 같습니다. 한국에선 범죄 신고는 112(경찰), 재난 신고는 119(소방 및 구급) 등으로 나뉘지만, 북미에서는 911로 통합돼 있죠.

이 쉽고 짧은 세 자리 번호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이 번호는 왜 생겨났을까요? 한 여성의 비극적인 죽임이 911 긴급 신고 전화의 탄생 배경이 됐습니다. 재정비를 마치고 돌아온 ‘코끼리의 번역노트 시즌2'는 한 살인 사건 이야기로 시작하려 합니다.

●비명

1964년 3월13일 새벽 3시 20분, 미국 뉴욕시 퀸스의 큐가든(Kew Gardens)에 한 여성의 비명이 울렸습니다. 소리의 주인공은 28세 여성 키티 제노비스였습니다. 그녀는 늦게까지 바에서 일하고 차를 몰아 집 앞에 막 도착한 참이었습니다.

다른 주민들처럼 집 근처 기차역에 주차하고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평소와 별 다른 것 없는 일상적인 하루의 마무리였죠.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뒤쫓던 남자가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윈스턴 모슬리. 출퇴근 기록 장치를 관리하는 회사원이었죠. 모슬리는 아내와 세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죠. 하지만 그는 사냥감을 물색하는 잔혹한 사냥꾼이었습니다. 차를 몰고 거리를 배회하며 희생양을 찾아다니던 중 신호대기로 정차하고 있던 제노비스를 발견하고 뒤를 쫓습니다.

제노비스는 주차하고 집으로 천천히 걸어갔죠. 익숙한 길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이곳에 이사 와 1년쯤 살았으니까요. 그러다, 한 남자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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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비스는 자동차 불을 끄고 문을 잠근 뒤, 아파트 입구를 향해 30미터가량 걸어갔다. 그녀의 집이 있는 튜더빌딩은 1층에 상점이 있고 2층부터 주거 공간이었다.

건물 전면에 상점 출입구가 있고, 아파트 출입구는 건물 뒤쪽으로 나 있었다. 깊은 밤, 대부분의 주거 지역처럼 어둠이 드리웠다.

제노비스는 한 남자가 인근의 건물 한쪽 끝에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긴장한 채 리치먼드힐에 있는 102경찰지구대로 연결되는 전화 박스로 향했다.

그녀가 서점 앞을 비추는 가로등까지 갔을 때 남자가 그녀를 붙잡았다. 제노비스는 비명을 질렀다. 책방을 마주 보는 인근의 10층 아파트에 불이 켜졌다. 창문이 열린 틈으로, 이른 새벽 정적을 깨는 목소리가 울렸다.

제노비스는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칼로 찌르고 있어! 사람 살려!”

위층 창문 중 하나에서 한 남자가 외쳤다. “그 여자 좀 내버려 둬!”

여자를 공격하던 남자는 위를 바라보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주차해 놓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떠났다. 제노비스는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 너머 조명 꺼지자, 남자는 제노비스에게 돌아왔다. 제노비스는 건물 측면의 주차장을 지나 아파트 입구로 향하던 참이었다. 남자는 그녀에게 다시 흉기를 휘둘렀다.

“사람 살려! 날 죽이려고 해요. 사람 살려!” 제노비스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사람 살려!”

아파트 창문이 다시 열렸고, 여러 집에서 조명을 켰다. 남자는 다시 자리를 떠 차를 몰고 떠났다. 제노비스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JFK국제공항으로 가는 Q-10 버스가 그녀를 지나쳐 갔다. 오전 3시 35분이었다.

남자는 다시 돌아왔다. 그때 제노비스는 건물 안쪽으로 기어들어 갔다. 새로 페인트칠한 갈색 아파트 출입문이 이제 안전하다는 희망을 주는 듯했다. 남자가 첫 번째 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거기에 없었다. 두 번째 문을 열자, 계단 아래 바닥에 쓰러진 제노비스를 발견했다. 그는 그녀를 세 번째로 잔혹하게 찔렀다. 치명상이었다.

경찰이 제노비스의 이웃인 한 남성으로부터 첫 신고를 받았을 때는 오전 3시 50분이었다. 경찰은 2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거리에는 이웃인 70세 여성과 다른 여성 한 명뿐이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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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비스는 이날 모슬리에게 칼에 찔리고 성폭행 당한 뒤 사망합니다. 잔혹한 죽음이었지만 그 해 뉴욕시에서 벌어진 6361건의 살인 사건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심야에 귀가 중인 여성이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일은 빈번하게 벌어졌습니다. 다음날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을 몇 줄짜리 단신 기사로만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과 비극적 죽음은 2주가 지나 뉴욕타임스 1면에 다시 등장합니다. 위에 인용한 내용이 당시 1면에 실린 기사 중 일부입니다. 그리고 55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기억하게 되죠. 그녀의 죽음을 아주 특별한 것으로 만든 것은 살인범인 모슬리도, 피해자인 제노비스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38’이라는 숫자 때문입니다.

사건 다음날인 1964년 3월 14일, 뉴욕탐임스는 키티 제노비스의 피살 소식을 단신으로 보도한다.(왼쪽) 그리고 약 2주 뒤인 3월 27일, 목격자들이 신고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추가 취재해 1면 기사로 보도한다.

●방관자 효과

사건 2주 뒤 1면에 다시 보도된 이 사건에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 담깁니다. 당시 38명의 목격자가 있었고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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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벌어진 지 2주가 지났지만, 이 지역을 관할하며 25년 동안 수많은 살인사건을 도맡아 온 베테랑 수사관 페드릭 루센 부서장은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루센은 수많은 살인 사건의 내용을 줄줄이 읊을 만큼 베테랑이다. 하지만 큐가든에서의 일은 살인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이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몹시 당혹스러웠다.

‘사건을 재구성해 보니, 범인은 35분 동안 세 차례 여성을 살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리를 떠났다가 두 번 돌아와 범행을 마무리했죠. 첫 번째 공격이 있었을 때 신고를 받았다면, 피해 여성은 지금 살아있을지 모릅니다.’

루센 부서장에 따르면 사건은 오전 3시 20분, 가로수가 늘어선 조용한 중산층 거주 지역인 오스틴거리에서 시작됐다.”

뉴욕타임스는 경찰 관계자의 정보를 근거로 목격자가 38명이라고 씁니다. 38이라는 숫자는 이 기사에 한 번 등장합니다. 당시 기사의 제목에 37이라고 나왔는데 이는 오기로 보입니다. 훗날 이 기사의 취재를 지시한 담당 데스크가 ‘38명의 증인: 키티 제노비스 사건’이라는 책을 썼죠.

38명의 목격자가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게 기사의 핵심입니다. 모슬리의 범행이 마무리될 무렵, 경찰에 신고한 남성이 있었는데 그는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한 뒤 이웃집으로 가서 신고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 남성은 신고를 제때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고 하죠.

살인사건을 목격하고도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는 남성의 발언과 38명의 목격자가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게 알려지자, 미국 전역이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참혹한 살인사건을 목격하고도 무시해 버린 무관심한 시민들의 태도가 큰 논란이 됩니다.

범인 모슬리는 6일 뒤 다른 지역에서 도둑질을 하다 붙잡혀 살인을 자백했다고 합니다. 그는 조사 중 제노비스를 비롯해 두 명의 여성을 더 살해했다고 밝혔습니다. 전과도 없던 그는 당시 그저 “아무 여자나 죽이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 사건이 깊이 있게 다뤄진 영역이 바로 심리학입니다. 제노비스 사건을 놓고 수많은 목격자가 서로 ‘누군가 신고했겠지’라고 여겨 누구도 나서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며 ‘방관자 효과’라는 용어도 만들어집니다.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도 부르죠.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원인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왔습니다. ‘방관자 효과’도 신고하지 않은 상황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왔죠.

경찰에 신고하는 과정 자체가 어렵지 않았나 하는 문제도 제기됐나 봅니다. 당시 경찰에 신고하려면, 0번을 눌러 교환원을 통하거나, 경찰서 전화번호를 눌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범죄를 신고하기에는 까다롭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개선해야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죠.

제노비스 사건 4년 후인 1968년 2월 911 긴급 신고 전화가 처음으로 도입됩니다. 짧고 쉬운 번호이면서 어느 지역에서도 쓰지 않는 번호라 낙점됐다고 합니다. 911 탄생을 이야기할 때 제노비스 살인사건이 빠지지 않고 거론됩니다. 쉽고 빠르게 신고할 수 있었다면, 누군가 더 쉽게 수화기를 들었을 수 있다는 것이겠죠. 한 사람(제노비스)의 비극적인 죽음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911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게 끝일까요. 38명의 목격자에 대해 이후에도 계속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911을 탄생시킨 살인 사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던 겁니다.

조셉 드 메이라는 변호사가 그린 당시 상황도를 보면 뉴욕타임스의 보도와 달리 목격자는 38명이나 되지 않았으며, 공격은 두 차례 있었고, 마지막 공격은 목격이 불가능한 건물 뒷편 내부에서 벌어졌다.

●의문과 진실

제노비스의 사망 40주년인 지난 2004년, 뉴욕타임스에 제노비스의 이름이 다시 등장합니다. 짐 라젠버거 기자는 논란이 됐던 이 살인사건을 두고 큐가든의 주민들이 품고 있던 것과 같은 의문을 품었습니다. '정말 38명의 시민이 살인사건을 목격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것일까?'

오랫동안 사실이라고 여겨오던 38이란 숫자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38명이란 숫자의 출처를 추적하지요. 38명이란 숫자는 경찰 관계자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뉴욕타임스의 메트로 데스크였던 A.M. 로젠탈은 한 고위 경찰 관계자와 함께 점심을 먹던 중 이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관계자는 로젠탈에게 귀띔하죠. “이봐, 퀸스에서 벌어진 사건이야말로 책으로 쓸 만한 얘기라고.”

이 경찰 관계자의 얘기를 들은 로젠탈은 현장에 기자를 급파해 이 기사를 취재합니다. 경찰의 말을 통해 뉴욕타임스는 처음부터 38명의 시민이 살인사건을 ‘목격’하고도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확신했죠.

라젠버거 기자는 당시 상황을 다시 살펴봅니다. 그러다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38명의 목격자가 신고하지 않았다는 기사가 애초에 매우 과장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검사도 목격자가 38명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선 38명이 정말 사건을 ‘목격’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모슬리가 제노비스를 향해 칼을 휘두르는 범행을 목격한 것은 실제 2~3명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비명 소시를 들은 이들이 실제 많았다고 하더라도,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 살인사건인지, 단순한 취객의 고함인지, 연인의 다툼인지 알 길이 없었을 겁니다.

또 뉴욕타임스에 보도됐던 것처럼 35분 동안 모슬리는 두 번 현장을 떠났다가 돌아와 총 세 차례에 걸쳐 제노비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는 것도 사실과 달랐습니다. 실제로는 두 차례였다고 합니다.

범인인 모슬리는 최초 공격 이후 창문에서 한 남자의 고함을 듣고 한 번 현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아파트 현관에 쓰러진 제노비스를 발견해 그녀를 살해합니다. 두 번째 습격 장소는 외부에서 목격할 수 없는 건물 뒷편의 실내였죠. 범행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최초의 습격이 이뤄진 책방 앞뿐입니다.

모든 목격자가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도 과장된 것이었습니다. 신고자는 총 3명이었다고 합니다. 앰뷸런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그를 잘 아는 이웃이 제노비스를 발견해 그를 끌어안고 돌보았다고 합니다.

라젠버거 기자는 이런 의혹들을 이후 계속 제기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과거 보도가 매우 과장됐다는 것은 이제 사실로 인정받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2015년 키티 제노비스의 남동생은 범행 상황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The Witnesses)에 출연하며 사건의 진실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도 합니다.

결국 뉴욕타임스는 1964년 3월 27일의 보도의 온라인판에 ‘편집자 주’를 답니다. “이후 뉴욕타임스와 다른 언론은 이 사건의 중요한 사실관계에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후 40주년을 맞아 쓴 이 사건에 대한 보도와 범인의 사망 후 쓴 부고 기사, 사건에 대한 각종 에세이 등을 보도했습니다.” 오보라고 명확히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관계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시인한 것입니다.

하지만 범행 당시 많은 시민들이 사건에 무관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과장됐을지 모르지만 실제 개입한 이들은 적었습니다. ‘방관자 효과’라는 용어는 이후 타인의 비극에 무관심한 현대인의 모습을 설명해 주는 단어로 빈번하게 사용됩니다. 그만큼 비슷한 일이 많이 벌어졌다는 뜻입니다. 911의 탄생과 방관자 효과 등으로 제노비스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최초 보도의 잘못된 점들이 하나 둘 드러났지만, 그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일이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만, 몇 가지 더 살펴봐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범행 현장 사진.

짐 라젠버거 기자는 2006년 <아메리칸 헤리티지>에 제노비스에 대한 글을 기고하면서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만약 42년 전 뉴욕타임스가 이 사건을 처음부터 정확하게 보도했다면, 우리 중 누구도 키티 제노비스의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그 이야기를 읽지 못했을 것이다.”

‘신고하지 않은 38명의 목격자’라는 당시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충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오보 혹은 매우 과장된 보도였죠. 하지만 그 보도가 없었다면 제노비스는 그해 벌어진 수많은 살인사건의 흔한 피해자 중 하나로 이름조차 남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제노비스 사건으로 그녀는 이름을 알리게 됐지만, 정작 그녀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사람들은 관심 갖지 않았습니다.

제노비스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가톨릭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0대에 짧게 결혼했다가 정리했죠. 살해당하기 전까지 살던 집에 함께 지내던 룸메이트는 그녀의 동성 파트너였습니다. 파트너인 매리 앤 젤론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데도 6시간 넘게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들은 훗날 보도를 통해서 겨우 알려집니다.

주목 받지 못 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됐습니다. 살인사건이 벌어졌지만, 목격자만 주목 받았고 정작 피해자는 주목받지 못하고 잊혀졌습니다. 남은 것은 단지 이름 뿐이었죠.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 대해선 몰랐습니다. 제노비스는 그래도 이름은 남았다고 위안해야 할까요.

범인인 모슬리의 손에 다른 여성도 살해했다고 언급한 것을 기억하시나요. 그 피해자들이 누구인지 찾아보려 했지만 검거 당시 이름이 짧게 거론된 것 외에는 다른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억울하고 처참한 죽음이라는 건 제노비스와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가족이 아니라면 누구도 그 삶이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디어가 사건과 죽음 소비하는 방식은 이처럼 불공평하고 냉혹합니다.

살인범인 모슬리는 피해자들보다 더 많이 알려집니다. 모슬리는 이 사건으로 수감 중 병원 치료를 이유로 외부로 나갔다가 탈출해 인질을 붙잡고 성폭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고통을 겪고 있다며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피해자가 겪는 고통은 1번 혹은 1시간, 또는 1분으로 끝나지만, 붙잡힌 사람은 영원히 고통받게 된다.” 모슬리는 13차례나 가석방 심사를 받았고 모두 탈락합니다.

모슬리는 2016년 교도소에서 사망합니다. 사망하기 전까지 그는 미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수감된 인물이었죠. 그가 사망했을 때는 뉴욕타임스에 부고 기사가 실렸습니다. 제노비스가 사망했던 당일 몇 줄의 사건 기사가 보도된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비로소 제노비스 사건의 이야기는 마무리되는 것 같습니다.

한 건의 살인 사건이 이처럼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도 감추고 있습니다. 앞으로 코끼리의 번역노트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사건 사고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숨은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여러분과 다양한 영감을 나누겠습니다.

키티 제노비스를 살해한 윈스턴 모슬리. 그를 '911 킬러'라고도 부른다.

🐘참고기사

  1. Winston Moseley, Who Killed Kitty Genovese, Dies in Prison at 81 | The New York Times

  2. Remembering Kitty Genovese | The New York Times

  3. A Call for Help | The New Yorker

  4. Kitty, 40 Years Later | The New York Times

  5. How Many Witnessed the Murder of Kitty Genovese? | The New York Times

  6. The Truth About Kitty Genovese | The New York Daily News

  7. Nightmare On Austin Street | American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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