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40년 운영한 가게 앞에 노숙자 텐트촌이 생겼다
목소리가 고운 메추라기
Apr 28,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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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뉴스레터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코끼리, 코끼리의 번역노트> S1E7입니다.🐘

[S1E7] 40년 운영한 가게 앞에 노숙자 텐트촌이 생겼다

미국 최대 규모의 노숙인 텐트촌이 형성된 애리조나주 피닉스시. Fox10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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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40년간 매주 평일 같은 시간에 자신이 운영하는 샌드위치 가게 올드 스테이션으로 왔지만, 조 파일러스(69)는 이제 가게에 도착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안 됐다. 그는 텐트 30여 동이 세워진 인도 옆에 차를 세우고, 호신용 스프레이를 쥔 채 가게 문을 열었다. 입구 위의 표지판은 통로 위에 잘 걸려있었고, 테이블 위에 놓아둔 조화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모습으로 테이블에 잘 놓여 있었다. 그는 전화기를 들고 사업 파트너이자 아내인 도비 파일러스(60)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두 정상이야.” 그가 말했다. “이상 없어요.”

“확실해요 여보? 문제없는 거죠?” 그녀가 물었다. “가게 주위는 좀 어때요?”

그는 창밖으로 매디슨가를 바라봤다. 이곳은 미국 최대의 노숙인 밀집 지역이었다. 1100명 정도가 이 거리에서 노숙했다. 지난 2월 아침, 그는 노숙인 예닐곱 명이 거리에 불을 피우고 모여든 걸 보기도 했다. 한 젊은 여성은 도로 한 가운데 광고 현수막을 덮고 누웠다. 한 남자는 혼자 중얼거리며 조의 가게 쪽으로 걸어오다가 식당 야외 테이블에서 불과 3미터쯤 떨어진 곳에 소변을 눈 적도 있다.

“그냥 평소 같아. 혼돈과 공포.” 조는 아내에게 말했다. “그래도 가게는 괜찮네.”

이 부부에게 이런 대화가 매일 아침의 문안 인사가 된 것도 3년이 돼 간다. 같은 기간 피닉스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 노숙자가 넘쳐났다. 서부의 도시들은 주택 위기, 정신건강의 위기, 오피오이드 중독의 대유행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런 위기 징후들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도심 속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가게 문 앞까지 밀어닥쳤다. 시애틀에서는 2020년 이후 2300개의 업체들이 도시를 떠났다. 이 모든 일에 지긋지긋해진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의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산책로마다 현수막을 걸었다. “산타 모니카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범죄와 타락으로 길거리는 정신병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에 비해 노숙자 숫자가 3배나 증가한 피닉스에서는 자영업자들도 사설 경비업체와 계약해 재산을 지키고 있다. 또 변호사도 고용해 시정부가 ‘거대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방지하지 못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파일러스 부부는 다른 자영업자 및 건물주 10여 명과 함께 이 소송에 원고로 참여했다. 이들은 노숙자들이 버리는 생활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청소도구를 더 마련해야 했고, 가게 주위에 철제 펜스를 설치했다. 그래도 이들은 여전히 매일 아침 8시면 문을 열고 첫 손님을 맞으며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좋은 아침. 같은 걸로?” 조가 언제나 이탈리안 통밀 샌드위치를 시키는 건설 노동자를 보자 말했다.

“머리 새로 했나봐. 멋진데.” 몇 분 뒤, 일주일에 세 번은 와서 미트볼 샌드위치를 시키는 시청 직원에게 인사했다.

데비가 점심 손님이 몰려들기 전 도착해 영업을 돕는다. 그녀는 계산대에서 손님들을 맞고, 그동안 조는 샐러드에 들어갈 토마토소스와 칠면조 고기를 준비했다. 매출 대비 수익이 많지 않아 부부가 매일 직접 일해 인건비를 아낄 수밖에 없었다. 부부는 아이를 갖게 되자 부엌을 개조해 돌봄 공간을 마련했고 케이터링 사업을 확장해 자녀들을 대학까지 보냈다. 인구가 매년 2만5000명씩 늘어나고 물가는 미국의 타지역보다 빠르게 상승하며, 주거비 상승률도 기록적인 상태이지만,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가게를 찾아주는 충성 고객들을 위해 9개의 오리지널 샌드위치를 판매하고 있다. 거리, 텐트, 부서진 자동차 외에는 사람들이 갈 곳이 더 이상 없을 때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더 에어컨이 완비된 조의 가게로 모여들고 있었다.

“대량 주문을 할 거야" 한 여성이 계산대 앞으로 오면서 이야기했다. 그녀는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신발을 신고 쓰레기 봉투 안에 자신의 짐들을 넣어 가지고 왔다. “나는 데리 퀸dairy queen(아이스크림 판매점) 주인이야.”

“오 대단하네요. 어디 지점이요?” 데비가 농담하듯 물었다.

“전부 다.” 여자가 말했다. “나는 여왕 중의 여왕queen of the queen이야.”

“멋지네요.” 데비는 이렇게 말하며 이 여자를 테이블에 앉히고 메뉴와 물 한 잔을 건넸다. 그리고 여자가 쓰레기 봉지에 들어있는 물건을 테이블 위에 비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돌맹이, 기한이 지난 버스 티켓, 자전거 타이어, 옷가지, 베터리 17개, 주사기 몇 개와 손전등이 나왔다. “주문, 하시겠어요?” 데비가 물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를 몰라?” 그 여자는 말했다. 갑자기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우습게 보지 마. 왕은 대가를 원한다고.”

데비는 여자의 컵에 물을 다시 채워주고는 계산대 뒤로 가 조를 찾았다. 지난 몇 달 동안, 데비는 복통과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을 안고 일해왔다. 그리고 남편에게 더 이상 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가게를 팔더라도, 남편 없이 피닉스를 얼마간 떠나있게 되더라도 말이다. 그녀는 피닉스 인근 프레스콧의 부동산을 보러 다녔다. 피닉스에서 160킬로미터쯤 떨어진 애리조나주 중서부의 조용한 마을이다. 매주 거리에선 미술 전시가 열리고, 인근에 산과 호수가 있어 공기가 맑다.

“저 여자 좀 어떻게 해봐요.” 그녀가 남편에게 물었다. “계속 이럴 수는 없어요. 매번 저렇게 하잖아요.”

조가 아내에게 손을 뻗었다. “좀 나아질 거야. 이리 와요.” 조가 말했다. 하지만 밖에서 그 여자가 물건들을 바닥에 집어 던지는 소리가 났다.

“왕은 그에 걸맞는 대우가 필요하다니까!” 여자가 소리쳤다.

“미안해요. 이제 나가주세요.” 데비가 여자에게 말했다.

“이 도둑들! 너흰 악마들이야!” 여자가 말했다.

“제발요.” 데비가 말했다. “여긴 우리 가게에요. 그저 점심 장사를 하고 있다고요.”

A Sandwich Shop, a Tent City and an American Crisis, By Eli Saslow, The New York Times, March 1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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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번역 노트'가 그동안 소개한 기사 중 많은 수가 현장에 직접 가서 취재한 ‘르포르타주’(르포)였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관찰하니 내러티브의 핵심인 장면 구성이 가능하고, 눈 앞에서 움직이는 인물을 관찰해 생생하게 묘사도 할 수 있죠. 좋은 내러티브가 갖춰야 할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좋은 르포 기사를 쓰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현장을 직접 보고 그대로 정리만 해서는 구조를 갖춘 이야기, 즉 내러티브가 전달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며칠 동안 어떤 현장을 둘러본 뒤, 첫째 날은 무엇을 보았고, 둘째 날은 무엇을 했다는 식으로 단순히 나열한다면 그것을 이야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전쟁이나 재해 발생 지역을 방문해 취재하는 한국의 많은 르포 기사를 보면 생생한 장면이나 인물 묘사가 담겨 있어도 한 편의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바로 이야기 구조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한 기사는 수준 높은 르포 기사의 전형이라고 할 만합니다. 미국 전역에서 노숙인들이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의 도심에서 샌드위치 가게를 40년 넘게 운영한 주인공 조 파일러스씨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자가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들은 내용이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담아낸 좋은 르포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이야기 구조에 대해 짚어두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이야기는 3막(처음-중간-끝), 4막(기-승-전-결), 5막(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등의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어떻게, 왜 벌어졌는지를 갈등의 깊이를 더해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죠. 이런 역동적인 흐름 없이 단순하게 사건이 나열된다면 이야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야기를 이야기답게 만드는 구조가 튼튼하지 않거나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앞에 소개한 기사의 도입부를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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