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거짓 자백을 만드는 설득의 비결
목소리가 고운 메추라기
Mar 16,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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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뉴스레터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코끼리, 코끼리의 번역노트> 5화 중 일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로 이동해 주세요!

⑤ 인터뷰 by Douglas Starr | December 1, 2013 The New Yorker

Illustration by Leo Espinosa for The New Yorker

1955년 12월 14일, 대럴 파커는 점심을 먹기 위해 집에 돌아왔다. 파커는 네브래스카주 링컨에서 삼림감독관으로 일한다. 최근 아이오와주립대를 졸업한 뒤 아내와 링컨으로 이주했다. 아내 낸시는 밀가루와 국수를 만드는 회사의 영양사인 동시에 지역 방송국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침실에서 사망한 아내를 발견했다. 아내의 얼굴은 구타당한 상태였고 팔과 다리는 묶여 있었다. 목에는 전깃줄이 감겼다. 검시관은 살해 전 그녀가 성폭행당했다고 판단했다.

파커는 깊은 슬픔 속에서 며칠을 보내야 했다. 수사관들의 신문이 끝난 뒤 아내의 시신을 아이오와의 집으로 데려와 장례를 치렀다. 또 며칠이 더 흘렀다. 아내의 가족들과 함께 슬퍼하고 있을 때, 네브래스카주 랜캐스터 카운티의 검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새로운 정보들이 있으니 파커에게 잠시 들러 조사를 도와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파커가 도착하자 검사는 창문 없는 방으로 그를 데려갔다. 그곳에서 잘 차려입은 건장한 남자 존 리드를 파커에게 소개했다.

시카고의 전직 경찰 리드는 컨설턴트와 거짓말탐지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범죄자들에게서 자백을 받아내는 일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당시 경찰들이 종종 그랬듯 피의자들을 잔인하게 압박하기보다,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거짓말 탐지 기법을 결합한 현대 과학을 활용했다.

리드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한다고 꾀어낸 뒤 질문을 던졌다. 파커의 자리에서는 (거짓말 탐지기) 바늘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아내의 살인사건에 대해 답변할 때마다, 리드는 그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다. 몇 시간이 흐른 뒤 리드는 하나의 가설을 파커에게 이야기했다. 겉보기와 다르게 파커의 결혼생활을 행복하지 않았다. 낸시는 파커와의 잠자리를 거부했고, 다른 남자와 시시덕거렸다. 어느 날, 화가 난 파커가 자신의 것을 정당하게 받아냈다는 내용이었다. 9시간에 걸친 신문을 마친 뒤, 파커는 무너졌고 자백했다. 다음 날 자백을 철회했지만, 배심원은 그의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사건으로 리드는 큰 명성을 얻었다. 새로운 직원들을 고용하고, 더 많은 고객을 모았다. 그리고 더 정교한 신문 기법을 개발해나갔다. 오늘날 존 E. 리드 앤 어소시에이트(리드 컴퍼니)는 전 세계 다른 어떤 기업보다 많은 조사관을 훈련하고 있는 회사다. 리드 컴퍼니의 고객들은 경찰, 사설 보안 업체, 군부대, FBI, CIA, 비밀임무국(the Secret Service) 등이다. …. 리드 컴퍼니가 제공하는 신문 기법은 '리드 테크닉'이라고 불린다. 조사실 구성이나 수사관이 취해야 할 행동까지 현대 경찰의 신문 과정의 거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쳤다. 리드 컴퍼니는 자신들이 훈련한 이들이 피의자들로부터 자백을 받아낸 비율이 80%에 달한다고 말한다.

리드 테크닉은 행동 분석 신문으로 시작된다. 용의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과정이다. 인터뷰는 거짓말 테스트에 기반을 둔다. 위협적이지 않은 평범한 질문들로 기준이 되는 행동을 파악한 다음, 부담이 될 만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행동 유발 질문' 중에는 "이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나요?"와 같은 것들이 있다. 또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암시할 수도 있다. 리드 테크닉에선 '미끼'라고 한다. "범죄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DNA가 여기서 발견될 어떤 이유라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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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 테크닉 교본

✏️ 코끼리 메모

-인권과 정의에 대한 관념이 흐릿하고 과학적 증거 수집이 어려웠던 시절, 확신에 빠진 형사들은 피의자를 고문해 자백을 받아냈다. 범인이 아닌 줄 알면서도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고문을 사용하기도 했겠지만, 대체로 범인이 확실하다는 확신과 증거 부족 사이에서 택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미국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1950년대 등장한 리드 테크닉은 -이 기사를 쓴 더글라스 스타에 따르면- 상대의 자백을 '신사적으로 설득' 해낸다. 때리거나 고문하는 일 없이 말이다.

-스타는 이 기사를 쓰기 위해 보스턴의 리드 컴퍼니에서 기본 훈련 과정을 수료했다. 3일 동안 580달러를 주고, 경찰관, 사설 경호원, 연방요원 등 40명과 함께 교육받았다고 했다. 오늘 소개한 기사 본문에 나오는 세네스가 바로 이들의 강사였다.

-스타는 과학 전문 기자인데 다른 사안을 취재하다가 '거짓 자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취재를 시작했다고 한다. 때리는 것도 아니고, 고문하는 것도 아닌데 거짓으로 짓지도 않은 죄를 자백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지만, 많은 심리학자들은 자신의 말을 전혀 믿지 않고, 폐쇄된 환경에서 벗어날 유일한 가능성으로 '자백'을 생각해내는 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말한다. 조사관을 만족시키기 위해 거짓자백을 꺼낼 수밖에 없는 건 어떤 상황일까. 도덕적 책임을 덜어주는 '최소화' 기법이 자백을 유도해내는 이유도 이런 자백을 통한 부담 경감 때문이다.

-현대 심리학 기법을 활용했다고 선전해 현장에서 활용돼 왔지만, 문제는 이 리드 기법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조사 첫 단계인 행동 분석은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과정이다. 팔짱을 끼고, 머리카락을 만지고 하는 행동들이 거짓말을 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한다. 이렇게 비언어적 행동으로 거짓말을 알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는 국내에도 여러 책들이 소개돼 있다. 하지만 모두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행동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기사 본문에 경찰은 특히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는 연구 결과가 소개된다. 상대를 범인으로 확신하는 경찰. 어떤 말도 믿지 않는 경찰관 앞에 앉아 신문을 받으면 (고문 하지 않아도) 결국 짓지 않은 죄도 자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다리를 떠는 피의자, ‘왠지’ 거짓말하고 있다고 판단한 형사는 피의자 모르게 증거를 확보한 것처럼 심리적으로 압박해 자백을 받아낸다. 범행 도구를 보여준다거나, 피의자도 모르는 증거가 있는 것처럼 꾸며서 말이다. 사실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피의자의 자백만 바라보고 있으면서.

-실제 형사들도 피의자의 행동을 보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하기도 한다. 베테랑 형사의 ‘감’으로 묘사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감’은 사실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것이다. 스타는 이 기사에서 형사들이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데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실험결과를 소개한다. 거짓말을 확신하고 있는 형사는 진위를 감으로 구분할 능력이 형편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을 믿는 형사는 거짓말을 하는 피의자에게 자백을 받아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빠진다. 진실을 아무리 말해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경찰관 앞에선 거짓으로 자백하는 것 말고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국에서도 거짓 자백으로 인해 오심 사건이 문제가 된 듯하다. 그래서 PEACE 테크닉이라는 신문기법이 개발됐다. (스타는 이 교육도 받았다.) 리드 기법과 달리, 자백을 받아내는 게 아니라, 증거와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미끼를 던지는' 질문보다는 개방형 질문을 한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이야기해줄래요?" 특별한 암시를 주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답변을 세부적으로 검토한다. 거짓말을 한 용의자가 스스로 모순에 빠지도록 면밀히 검토한다는 것이다. 분량 문제로 번역해 소개하지 않았지만, 이 PEACE 테크닉으로 범인을 검거한 살인사건 사례도 흥미롭다.

-이 기사 말미에는 서두에 등장한 대럴 파커의 사연이 다시 등장한다. (해외 내러티브에 자주 사용되는 수미쌍관 구조다.) 파커는 진범이 밝혀지고 사면 받은 뒤, 2012년 네브래스카주로부터 50만달러를 배상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80세 노인이었고, 아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인으로 몰려 오랫동안 옥살이를 치른 뒤였다.

-한국에서 이런 리드 기법이 본격적으로 사용됐는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과거 <한겨레21>에서 거짓자백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거짓자백을 하는 인간의 심리와 구조적 원인을 분석한 <전락자백>이라는 일본 도서도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관심있다면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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