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거물 마약상을 연기하는 남자
목소리가 고운 메추라기
Mar 14,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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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뉴스레터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코끼리, 코끼리의 번역노트> 4화 중 일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로 이동해 주세요!

Illustration by Michael Cho for The New Yorker

④ 고용된 대부 By Yudhijit Bhattacharjee | July 23, 2018 The New Yorker

2011년 2월 9일 오후,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의 시티 호텔 스위트룸. 러시아 군용 무기를 암시장에 팔고 싶어하는 두 사람이 한 60대 남자를 만났다. 자신만만해 보이는 이 남자의 이름은 이아니(Yianni). 단정하게 턱수염을 다듬었고, 불룩한 배에 키가 작았다. 두 사람은 이아니가 탈레반의 무기 구입을 위임 받은 자산가라고 알고 있었다.

미 육군의 통역관으로 일했던 30대 이란계 미국인과 시카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50대 중반의 이스라엘계 미국인 두 사람은 수백만 달러어치의 불법 무기를 판매할 때 권장할 만한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몇 번의 만남 뒤 그들은 이아니의 자신감 넘치는 사교적인 태도에 안심할 수 있었다.

이들은 공급할 수 있는 무기 목록을 작성했다. FIM-92 스팅어, 재블린, M47 드래곤(이상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등이었다. 호텔에서 이아니는 짙은 그리스 억양으로 그들을 맞았다. 그는 신선한 애피타이저를 주문한 뒤, 커피 테이블에 접시와 은식기를 손수 놓아줬다. 이란계 미국인이 일어나 도우려고 하자, 이아니는 손을 저으며 넉살을 부렸다. “엄마 역할 좀 하게 둬. 알았지?” 그리고 몇 시간 뒤, 이들은 첫 물량을 흑해 연안의 루마니아 항구 콘스탄차로 넘기기로 합의했다. 금액은 300만 달러였다. ‘탈레반은 무기가 아주 급하다’고 이아니가 설명했다. ‘이들의 헤로인 농장을 미국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다음날, 정오 무렵, 남자들이 다시 모였다. “오늘 좀 ‘샤프’해 보이는데?” 이아니가 이스라엘계 미국인에게 말했다. 그리고 선금으로 건넬 25만 유로가 오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탄약 구입과 탈레반에게 무기 사용법을 지도할 전문가 고용 문제, 돈을 예치해 둘 은행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아니는 두 남자에게 자신이 건네준 블랙배리(스마트폰)가 안전하다고 안심시켰다. “괜찮습니다. 당신을 100% 믿습니다.” 이란계 미국인이 말했다. 이아니의 휴대전화가 울리자, 그가 받았다. “자, 가방은 뒷 좌석에 남겨둬. 알았지?” 남자들은 돈을 가지러 방을 나섰다.

복도에 섰을 때 이들은 총을 든 십여 명의 루마니아 경찰과 마주했다. 남자들은 법정에 선 뒤에야 이아니의 진짜 이름이 스피로스 에노티아데스라는 걸 알았다. 그는 미국 마약단속국(D.E.A.)의 위장 정보원이었다. 호텔 스위트룸에서의 만남은 녹음과 감시 속에서 이뤄졌다. 2013년 이 남자들은 미국 연방법원에서 징역 25년 형을 선고 받았다.

위장 수사(기만작전·Sting operation)는 종종 목표물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D.E.A.는 1973년 설립된 이후 전 세계적에서 벌어지는 마약과의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위장 수사에 의존해왔다. “어떻게 해서든 범죄 조직에 직접 뚫고 들어가 즉시 증거를 확보해내는 것만큼 효과적인 건 없습니다.” 전직 연방 검사인 랜달 잭슨(현 뉴욕 로펌 소속 변호사)이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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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에노티아데스에 대해 들은 건 2011년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에서 벌어진 D.E.A.의 위장 수사 작전을 취재하면서였다. 나이지리아 밀매업자와 러시아인 파일럿을 체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작전이었다. 레바논의 금융 컨설턴트 역할을 했던 에노티아데스는 재판에 나와 증거 수집 과정에서 자신이 한 역할에 대해 증언했다.

그가 밀매업자들과 나눈 대화 녹음을 듣고, 그가 얼마나 빨리 상대방과 신뢰(라포르·rapport)를 형성하는지 놀라웠다. 1990년대 중반 에노티아데스와 함께 일한 전직 D.E.A. 요원 로버트 러실로는 “경험에서 나온 노련함”과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재주” 덕에 그가 성공적으로 작전을 완수했다고 말한다. 에노티아데스가 이아니를 연기했을 때, 그는 이란계 미국인에게 “내가 입양한 아들”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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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메모

-스피로스 에노티아데스는 카르텔 보스 역할을 전문적으로 맡기 위해 미국 마약단속국(DEA)에 고용된 ‘배우’, 즉 위장 정보원이다. 비밀스러운 마약밀거래의 큰 손들을 적발하기 위해선 그들과의 위장 거래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에노티아데스는 범죄 경력도 없고, 마약을 다룬 적도 없다. 그렇다고 배우도 아니고, 그저 비즈니스맨일 뿐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독특한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의 사진을 찾아보았는데, 비슷한 인물을 발견했지만 에노티아데스 본인이라고 확인되지 않아 이 레터에 추가하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까지 DEA 요원들이 직접 잠입 근무를 했다고 한다. 기사에 소개된 전직 요원 마이클 레빈은 “우리는 우리의 삶을 가지고 ‘러시안룰렛’을 했다”고 말한다. 정부의 사법권을 행사하는 요원들이 목숨을 걸고 마약상으로 위장해 잠입하는 일은 너무 위험한 도박이다. 정부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의 수사기관들이 외부인들을 고용해 위장시킨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기사를 계속 보면, 일회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게 DEA의 입장인 듯하다. 그러니까 이 기사에 등장하는 에노티아데스는 민간인이고, DEA 수사관도 아니지만, 마약상으로 위장해 그들을 잡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사에 소개된 한 단락을 보면, 2016년에 미 법무부 발표에서 2010~2015년 동안 DEA가 1만8000개 이상의 첩보 소스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나의 소스가 하나의 정보원이라고 한다면 1만8000명이 범죄 정보를 제공한 셈이다. 이 중 대부분은 자신의 범죄에 관대한 처벌을 받기 위해 상사나 동료의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마약 수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마약을 건네 준 ‘상선’을 차례로 쫓아 올라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상선에 대해 입을 다물면 꼬리가 끊긴다. 상선에 대한 진술도 수사관과 담배나 나눠 피면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정식 조서를 꾸밀 때 말해야 합법적인 증거로서 활용할 수 있다. ‘약쟁이’들의 진술에 의존하는 수사 방식의 어려움 때문에 DEA는 정보원들을 활용하게 된 것 같다. 위장된 거래로 증거를 발굴해내는 것이다. 넷플릭스 <수리남> 등 대중매체에서 마약 수사물을 다룰 때 ‘위장’ 수사관 혹은 민간인 정보원이 등장하는 것도 증거 수집이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런 작전은 한 편의 연극이나 영화와 같다. 작전에 투입되기 전 수사관들과 다양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유연한 대본을 만들고, 극의 진행을 연구한다. 이 연극의 문제가 있다면 연기자가 잠입한 첩보원 한 사람 뿐이라는 점이다. 수사관들은 프로듀서, 작가, 감독이 돼 배우인 위장 요원들을 ‘디렉팅’할 뿐, 현장에서 호흡을 맞춰야 하는 이들은 상대 ‘배우’가 아니라 실제 마약상이다.

-첩보원들이 이런 위험 일에 뛰어드는 건 상당한 보상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콜롬비아 전직 마약상은 2008년 무기 밀매업자를 체포하는 데 공을 세우는 등 두 건의 사건에 개입해 750만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한 건당 200만~300만달러 이상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목숨을 건 연기의 대가는 유명 영화배우 수준이 아닐까 한다.

-기사에도 소개됐지만 이런 첩보 요원들은 개인의 삶을 내려놓아야 한다. 에노티아데스 역시 자신의 애인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 명확히 알리지 못했고, 개인적으로 하던 사업 역시 불규칙한 작전에 투입돼 망해버렸다고 한다.

-목숨을 잃거나 다치면 곤란한 상황을 겪는 건 이들도 마찬가지다. 2015년 미 법무부 감사 결과 살해된 정보원의 가족 및 장애를 입은 정보원들에게 다양한 연방정부의 혜택이 제공된 사례 17건이 발견됐다. 일종의 연금인데 적용 조건과 입증 절차가 모호하다는 문제도 있다고 한다. 실제 피해를 본 이들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를 쓴 유디짓 바타차르제에(Yudhijit Bhattacharjee)는 취재 후기를 설명한 영상에서 "트럼프 시대에 사람들은 진실에 대해 걱정하고, 진실이 어떤 환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진실을 흐릿하게 만드는 게 전문인 남자에 대해 소개하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진실 속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는 사람이란 뜻일 것이다. 유디짓은 2015년 취재를 시작해 에노티아데스의 이야기를 검증하느라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자기 삶을 모두 내팽개치고 마약상 검거를 위해 범죄자로 위장 잠입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과거 경찰 중에도 잠입수사를 벌인 이들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요즘은 잠입이 아니라 며칠 동안 하는 잠복 수사도 손사래 치는 경찰 수사관도 많다. 자기 삶을 던지면서까지 어떤 일에 뛰어드는 이들의 마음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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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을 저녁식사가 희망찬 염소 님 등 2명이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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