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네덜란드 최악의 범죄자를 고발한 여동생
목소리가 고운 메추라기
Mar 13,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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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뉴스레터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코끼리, 코끼리의 번역노트> 2화 중 일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로 이동해 주세요!

크라임 패밀리 By 패트릭 라든 키프 | The New Yorker, July 30, 2018

네덜란드 최악의 범죄자인 오빠를 고발한 아스트리드 홀레이더는 암스테르담의 안전가옥에 숨어지내고 있다. 성인이 된 후 그녀의 외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기자가 묘사할 수 있는 그의 모습은 수영장을 닮은 푸른 눈 뿐이었다.

Photograph by Carla van de Puttelaar for The New Yorker

아스트리드 홀레이더의 눈-수영장처럼 파란-은 보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설명해줄 수 있는 그녀의 외모는 여기까지다. 그녀는 고향인 암스테르담에서 숨어 지내는 유배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가구들이 갖춰진 안전가옥에서 살아왔다. 그녀는 지하주차장이 딸린 곳을 선호했는데, 잠깐이지만 방탄차량으로 옮겨 타는 동안의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중고로 1만5000유로를 들여 그 차를 샀다. 두 개의 방탄조끼도 갖고 있다. 그녀는 어떻게 암살당할 지, 끔찍한 시나리오들을 구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차가 빨간불에 멈춰 서고 옆으로 낯선 차가 다가오면, 핸들을 꼭 붙잡았다. 심장이 요동쳤다. 신호가 바뀌면, 그제야 숨을 내쉬고 차를 움직였다.

인구 100만이 안 되는 도시 암스테르담은 아무도 모르게 숨기는 어려운 곳이다. 특히 이곳에서 자랐다면 더 그렇다. 다행히 홀레이더(Holleeder, '홀-레이-더'라고 발음한다)는 지금까지 그녀의 사생활을 잘 지켜왔다. 위협을 받기 전에도 그랬다. 성인이 된 후 그녀의 사진은 인터넷에선 찾을 수 없다. 오늘날 그녀는 소수의 친구들과 은밀한 만남을 갖긴 하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집에 머문다. 암스테르담을 돌아다녀야 할 때는 아주 비밀스럽게 움직인다. 가끔 변장을 한다. 그녀는 여러 개의 가짜 코와 이빨 컬렉션을 갖고 있다. 홀레이더는 일반적으로 검은색 옷을 입지만 누군가 따라온다고 의심이 되면 화장실에 몸을 숨긴 뒤 가발과 빨간 드레스를 입고 나타날 수도 있다. 가끔 그녀는 남자로 변장하기도 한다.

이런 변장술은 사회생활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녀에겐 확실히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건 위험한 일이다. 홀레이더는 주위 사람들의 에너지를 끌어들이는 활기찬 여성이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보호해야 했다. 52세의 싱글 여성인 그녀는 최근 나에게 "관계는 과대평가됐다"고 말했다.

홀레이더를 향한 생명의 위협은 그녀가 2013년, 한 형사 재판에서 핵심적인 증인이 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악명 높은 범죄자에 맞서 증언하기로 했다. 이 남자는 그의 얼굴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에서 따온 별명인 '더 노즈'(the Nose·코)라고 알려졌다. 위험한 선택이었다. "그를 수사기관에 넘긴 사람들은 모두 죽었어요." 그녀가 지적했다. 더 노즈는 네덜란드의 유일한 최상위 보안 시설을 갖춘 감옥에 갇혀있다. 2016년 그는 다른 갱단의 리더들에게 홀레이더와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두 명의 또 다른 증인을 '처형'할 수 있는 멤버들의 명단을 요구한 혐의를 받았다. 그의 음모는 죄수 중 한 사람이 수사기관에 자백하면서 드러났다. 하지만 위험한 상황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는 당연히 그렇게 할 거예요." 홀레이더가 말했다. "그는 나를 죽일 겁니다."

더 노즈가 그런 일을 하고 말 것이라는 그녀의 발언에는 이례적인 확신이 담겨있었다. 그것은 아마 그녀가 한 때 그의 법률 대리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홀레이더는 도피 생활을 하기 전까진 유능한 형사 전문 변호사였다. 더 중요한 점은, 그녀가 그의 여동생이라는 것이다.

더 노즈의 이름은 빌럼(빔) 홀레이더. 그는 5건의 살인, 2건의 살인미수, 그리고 "범죄활동 가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 절차는 보안이 철저한 법정에서 열린다. 암스테르담 외곽 산업지구에 있는 '벙커'라 불리는 곳에 있다. 아스트리드가 증언할 때 그는 불투명 스크린 뒤에 앉아 법정 안의 누구도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된다. 또 그녀가 빔을 볼 수도 없다. 빔은 그녀만 알 수 있는 위협적인 눈빛과 몸짓으로 그녀의 증언을 방해할 방법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한 검사가 법정에서 최근 설명한 것처럼, 빔은 "적극적으로 겁을 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초대형 재판'-네덜란드 언론은 이렇게 불렀다-은 장관을 연출하곤 했다. 사람들은 동 틀 무렵부터 작은 공용 갤러리에 마련된 좌석을 확보하겠다는 희망으로 줄을 섰다. 이 재판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아스트리드 자신이었다. 2016년 그녀는 자서전 '유다'를 출간했다. 빔과 함께 자란 어린 시절과 그를 배신하기로 결정한 내용을 담았다. 이 책은 인구 1700만 명인 나라에서 50만 부가 팔렸다. 아스트리드는 이제 유명 작가가 됐지만, 어떤 독자도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저자 사인회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의 제목은 자신의 오빠를 살인죄로 고발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그녀가 느끼는 깊은 양가감정을 다루고 있다. 이 선택을 둘러싼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는 이 책을 성공하게 만들었고, 수많은 구경꾼들을 벙커로 이끌었다. 홀레이더 형제들의 싸움은 결국 법정 대결로 모아졌다. "이건 궁극의 배신입니다." 아스트리드는 3월 법정에서 말했다. 그녀는 흐느끼면서 빔의 수많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오빠를 아직 사랑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 자신도 오빠의 범행을 증언한다는 것이 미친 짓이고 끔찍한 일이라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자신이 키우는 사랑스러운 반려견이 아이를 물었다면, 당신은 그 반려견을 내려놓고 아이를 선택해야 합니다."

(중략)

빔은 4남매 중 맏이였고, 아스트리드는 막내였다. 소냐와 제라드가 둘째와 셋째 형제였다. 그들은 요단에서 자랐다. 좁은 주택과 운하가 있는 그림 같은 지역이다. 지금의 요단은 값비싼 부티크가 가득하지만, 1960년대 이곳은 노동자 계층이 살던 동네였다. 아스트리드의 아버지 이름도 '빌럼'이었다. 근처에 있던 하이네켄 양조장에서 일했다. 그는 회사를 경영한 알프레드 (프레디) 하이네켄을 존경했다. 하이네켄의 녹생 병은 미국에서 수입되는 맥주의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프레디 하이네켄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였다. 아스트리드가 어렸을 때, 아이들은 하이네켄 로고가 들어간 펜으로 숙제를 했고, 하이네켄 로고가 그려진 컵으로 우유를 마셨다. 그들의 집은 "하이네켄에 흠뻑 빠져있었다"라고 아스트리드는 떠올렸다. 그녀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는 폭력적인 사디스트였다. 아스트리드의 어머니, 스테인과 그의 자녀들을 하찮게 여기며 학대했다. 아스트리드는 그가 지금 처한 환경에 비춰보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저는 감옥에 갇혀있는 게 익숙해요. 집이 감옥이었으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빔은 키가 컸고, 근육질 팔과 마늘 코를 가진 잘생긴 10대였다. 그도 그의 아버지처럼 신경질적이었고, 두 사람은 자주 부딪혔다. 빔은 저녁이면 외출을 하기 시작했고 매우 늦게 집에 돌아왔다. 그는 집에 오면 아스트리드를 깨워 "애시, 자고 있었어? 아빠는 자러 갔어? 또 미쳤나?" 하고 속삭였다. 아스트리드는 "오빠가 늦는다고 소리 질렀어. 엄마가 시계를 몰래 돌려놔서 눈치채지는 못했어." 스테인은 "열두 살, 열세 살 때까지" 그녀의 아들이 사랑스러웠다고 했다. "빔이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는 줄은 몰랐어요." 스테인은 "그 사람들은 다 범죄자들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중략)

1983년 11월 9일, 프레디 하이네켄이 암스테르담에 있는 사무실을 나서고 있을 때 주황색 미니밴이 옆으로 다가와 섰다. 가면을 쓴 남자들이 그와 그의 운전기사를 총으로 위협하며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미니밴은 자전거 도로를 따라 이동해 도시 외곽의 창고로 향했다. 하이네켄과 그의 운전사는 방음설비가 된 방 안에 갇혔다. 그날 밤 네덜란드 경찰은 현재 화폐 가치로 3000만 달러가 넘는 몸값을 요구하는 쪽지를 받았다.

"납치는 다른 곳에서나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같은 곳이요." 납치 사건을 다룬 책을 쓴 네덜란드의 범죄 전문기자 피터 R 드 브라이스(Peter R. de Vries)가 내게 말했다. 프레디 하이네켄은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네덜라드 대중은 이 납치 사건에 사로잡혔다. 그 당시 둘째 소냐는 콜 반 하우트(Cor van Hout)와 딸 프랜시스(Frances)를 낳아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날 밤, 아스트리드와 빔은 그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뉴스를 보았다. "정말 멍청한 일이야." 아스트리드는 그때 한 말을 기억했다. "누가 하이네켄을 납치하겠어. 그 놈들은 평생을 쫓기며 살 거야."

"그렇게 생각해?" 빔이 물었다.

"완전 확신해." 그녀가 대답했다.

3주가 지나도 수사는 진전이 없었다. 하이네켄의 가족들은 납치범이 지시한 대로, 네 종류의 화폐로 된 몸값 다섯 자루를 운전사에게 건넸다. 운전사는 위트레흐트(Utrecht)로 향했고 빗물 배수구에 돈이 든 자루를 던져놓고는 떠났다.

돈이 전달된 뒤에도 인질들은 풀려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무렵 경찰은 익명의 제보를 받아 암스테르담의 창고로 향했다. 창고 안에서 프레디 하이네켄과 그 운전사가 발견됐다. "나는 왼팔이 쇠사슬에 묶여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라고 하이네켄은 성명을 통해 밝혔다.

...

인질들은 구조됐지만 범인이나 몸값, 범죄도 사라졌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아스트리드가 콜이 없는 동안 소냐의 집에 머물고 있을 때 중무장한 경찰들이 문을 뚫고 들이닥쳤다. 익명의 정보원이 네덜란드 수사기관에 납치범의 신원을 제공했다. 용의자는 빔 홀레이더와 콜 반 하우트였다. 경찰은 아스트리드와 소냐를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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